
영화 휴민트는 베테랑, 모가디슈, 밀수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의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월 11일에 개봉하여 설 연휴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개봉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제목인 휴민트는 사람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는 정보 수집 활동을 뜻하는 영어 표현에서 온 말입니다. 위성이나 통신 감청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하고 사람의 감정이 깊게 얽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휴민트의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정리하고, 영화와 함께 떠올려 볼 만한 과거의 실제 간첩 사례를 살펴봅니다. 개봉 당시 극장가에서는 휴민트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극장에서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OTT로 확인했을 때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등장인물
주인공 조 과장은 조인성이 연기합니다. 조 과장은 국가정보원의 블랙 요원으로,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해외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입니다. 조 과장은 동남아시아에서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중 함께 일하던 정보원을 잃게 되고, 그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조인성은 모가디슈와 밀수에 이어 다시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냉정한 요원의 얼굴 뒤에 사람을 잃은 죄책감을 숨긴 인물을 연기합니다. 무빙에 이어서 조인성 특유의 피지컬과 총격 액션은 국정원 요원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박정민은 북한 국가보위성의 조장 박건을 연기합니다. 박건은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된 인물입니다. 박건은 조사를 이어 가던 중 이 사건이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박정민은 상대를 끝까지 쫓는 집요함과 체제 안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함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박정민 특유의 짜증 섞인 페이스와 감정 연기는 귀찮은 업무에 대한 불만일지 체제에 대한 불만인지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박해준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 황치성을 연기합니다. 황치성은 박건이 조사하는 실종 사건에 얽혀 있는 인물이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이끄는 핵심 인물입니다. 체제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민들을 팔아넘기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사실상 북한의 고위층을 형상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해준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로, 이번 작품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외교관의 얼굴을 보여 줍니다. 신세경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채선화를 연기합니다. 채선화는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 과장의 정보원이 되는 인물로,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 밖에도 정유진이 국정원 직원 임 대리를 연기하며 조 과장의 작전을 돕습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그 사이에 선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인물들을 통해 촘촘하게 엮입니다.
줄거리
영화는 조 과장이 동남아시아에서 국제 범죄 조직을 쫓는 작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작전 도중 조 과장이 아끼던 정보원이 목숨을 잃게 되고, 조 과장은 깊은 상처를 안게 됩니다. 정보원이 남긴 마지막 단서는 러시아의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조 과장은 동료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단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와 북한, 중국이 가까이 맞닿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첩보전의 무대로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 과장은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채선화와 접촉합니다. 조 과장은 새로운 휴민트 작전을 위해 채선화를 정보원으로 선택하고, 채선화는 어머니의 치료비라는 절박한 이유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북한 식당은 북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에는 좋은 장소이지만, 그만큼 정체가 드러났을 때의 위험도 매우 큽니다. 채선화는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위태로운 이중생활을 시작합니다. 영화의 홍보 문구인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말처럼, 조 과장에게 채선화를 지키는 일은 이번 작품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같은 시기 북한 국가보위성의 박건도 국경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합니다. 박건은 조사를 이어 가던 중 북한 총영사 황치성이 이 사건과 깊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의 뒤에는 북한 당국과 러시아 범죄 조직이 함께 얽힌 인신매매와 마약 유통이 숨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조 과장과 박건,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채선화의 운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거칠게 부딪히면서 영화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강렬한 액션으로 이어집니다.
과거 간첩 사례
영화 휴민트는 특정한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긴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정보전과 사람을 이용한 첩보 활동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여러 차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에 드러난 이른바 깐수 사건입니다. 북한 공작원이었던 정수일은 외국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오랫동안 한국에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8년에는 원정화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원정화는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온 뒤 군 장교 등을 통해 군사 기밀을 빼내 북한에 넘긴 혐의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이후 수사 과정과 증거를 두고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는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 두 명이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했다가, 정보 당국의 합동 신문 과정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 채선화처럼 해외의 북한 식당 종업원이 주목받은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의 지배인과 여성 종업원 등 13명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들어온 일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 종업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탈북이었는지, 아니면 정보기관이 기획한 일이었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 사례들은 모두 사람이 직접 신분을 숨기거나 움직이며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제목인 휴민트와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해외의 북한 식당은 오래전부터 남북한 정보전의 무대로 거론되어 왔습니다. 필자는 휴민트가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 속 채선화의 불안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휴민트는 화려한 첩보 액션 속에 정보원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삶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실제 간첩 사례들을 함께 떠올리며 영화를 보면,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거운 일인지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첩보 액션을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입니다.